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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정말이지 엄청 시달렸다고…….”

 

신타로의 말에 귤을 까고 있던 루가 손을 멈추었다. 코타츠 위에 턱을 괸 신타로가 구시렁거렸다. 아니, 꼭 다들 연말만 되면 나한테 그런다니까? 내가 고양이 손도 아닌데. 한숨을 길게 내뱉자 루가 그 입에 귤 한 조각을 쏙, 넣어주었다. 수고했어. 신타로. 잘 익은 귤의 달콤함과 신 맛이 신타로의 혀를 자극했다.

 

핸드폰에는 연말을 기념하는 라인 메세지들이 가득이었다. 초록색의 앱 아이콘 옆에 떠있는 빨간 뱃지의 하얀 숫자가 세 자릿수를 넘어가고 있었다. 다만, 정확히는 몇 개를 제외하면 한 단체 채팅방에서만 떠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타로가 그것을 본체만체,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이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는 거냐…. 몇 시간 전. 별 일 없으면 만나서 덕담을 해주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을 불러 갖은 고생을 하게 한 얼굴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길거리에서 단기 알바를 하는 타카네와 카노를 만났던 신타로는, 말 그대로 털린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었다. 덕담을 해주겠다며 자신을 불렀던 둘이, 왜 같이 길거리 노점상 알바를 하고 있던 건지는 모를 영문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적당히 평범한 덕담을 듣게 되어 별 일 없겠거니, 생각해 ‘기왕인데 뭐,’ 라고 물건 뒷정리를 돕던 것이 화근이었다.

신년 연애 운이 좋아진다며 붉은 실의 커플 팔찌를 강매당한 것을 시작으로, 둘에 의해 시내 이곳저곳을 끌려 다니며 노점상 일을 도왔다. 답례로는 콜라 한 병을 받은 게 전부였다.

 

스멀스멀 떠오르는 기억에 속이 끓은 신타로가 위에 콜라를 들이부었다. 그렇지만, 팔찌는 잘 샀다 싶었다. 코타츠 위에 가지런히 모아진 손, 그 손목에 매여진 붉은 실 팔찌가 썩 흡족했다. 구입 경로는 탐탁치 못했지만.

자신의 손목을 가른 붉은 실과 루의 손목을 가른 붉은 실을 번갈아보다가 피식, 웃음 지었다. 서로 맞닿는 쪽에 매어놓은 것이 운명의 붉은 실을 연상케 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따끈따끈한 코타츠, 슬며시 맞잡고 있는 손, 부대끼고 있는 몸의 알맞은 온도. 신타로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서 ‘연말’과 ‘덕담’ 두 단어만이 머릿속에 남을 정도로 기분이 꽤 좋아졌다.

 

“아. 있잖아 루.”

 

“응?”

 

“뜬금없지만 말이지‥ 내년에는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힘들었으면 좋겠네.”

 

말하고도 민망했던지 신타로가 큼, 목을 가다듬었다. 사실 신타로와 루는 작년에는 아지트에서 모두와 모여 덕담을 주고받았었다. 그래서인지 신타로는 유독 이번 연말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어째선지 아쉬운 느낌이 들어 민망함에도 말을 주었다.

아? 응, 그랬으면 좋겠다…! 갑작스레 들은 덕담에 루가 멈칫하다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 더 다른 할 말은 없어?”

 

종결형 어미로 끝나버린 반응에 신타로가 팔을 긁적였다. ‘응? 어떤?’ 루의 입에서 애매한 대답이 돌아왔다.

함께한 지 햇수로만 2년이 넘었으니, 서로 이런 면에서 해줄 말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다. 애초에 표현이 많은 커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덕담 정도는 되돌아 올 줄 알았는데. 콜라 끊으라는 소리도 괜찮은…. 왠지 모를 아쉬움에 속으로 떠들던 신타로가 눈동자를 흔들었다. ‘아니, 그건 무리.’ 어찌됐던 콜라는 포기 못하는 자신이 웃기게 느껴져 멋쩍은 웃음이 흘렀다. 한참 실소하던 신타로가 말이 없는 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도 덕담 듣고 싶어’, ‘덕담은?’, ‘무슨 말이라도 해주라…’ 멀뚱한 시선 너머로 그런 말소리들이 루의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짧은 물음 후에 혼자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고, 웃던 신타로의 모습이 스쳐지나가 머릿속에 전구가 켜졌다.

덕담이 듣고 싶은 거였구나, 신타로‥ 귀여워‥. 시선에 눈을 맞춘 루가 버릇처럼 입을 오물거렸다. 사실은 그랬다. 덕담을 받았으니 줘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부끄러움에 주지 못한 말이 혀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아니다. 저기, 나도 덕담해도 될까?”

 

“! 아, 응. 물론이지.” 눈이 크게 뜨인 신타로가 노호혼 마냥 고개를 숙였다.

 

자세를 고쳐 신타로를 바라보고 앉은 루가 신타로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전해져오는 차가운 손의 감촉에 신타로가 잠시 움찔거렸다.

 

이런 것도 덕담일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운을 뗀 루의 얼굴에 노을이 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냥. 신타로가 많이 사랑받았으면 좋겠어.”

 

“‥그. 나, 나한테서.” 사근사근히 마음을 건넨 루가 부끄러움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루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덕담을 듣고 있던 신타로의 양 뺨에도 한가득 노을이 졌다. …윽. 신타로가 작게 신음했다. 시간은 오후 11시를 넘어가는 중이었지만, 둘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포근한 저녁이었다.

 

부끄러움으로 젖은 침묵을 먼저 깬 건 신타로였다. 손을 풀어 낸 신타로가 토실토실한 허리를 한 팔로 가만히 끌어안았다. ‥응? 끌어안는 행동에 반문한 루가 긴장감에 살짝 등을 굳혔다.

신타로가 느릿하게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이내 좋은 표정으로 미간을 가볍게 구기고는, 루의 이마에 입술을 붙였다 떼어냈다.

 

“‥많이 줄테니까 걱정 마.”

 

“…? 아니, 내가 준다는 소리였….”

 

“그러니까! 아니. …윽. 부끄럽다고 이런 거‥. 나도, 받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루에게 정정하느라 언성을 높인 신타로가 큼, 다시 한 번 목을 가다듬었다. 더, 더 좋아해줄테니까. 루도, 나… 더 좋아해달라고. ‥알았어?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콧소리를 흘린 루가 눈을 곱게 접어보였다.

 

부끄러움에 한층 더 미간이 구겨진 신타로의 얼굴이 타올랐다. 자신의 눈앞에서 헤실헤실 웃는 루의 콧등에 뺨을 부볐다.

 

“‥그럼 그때는, 키스해도 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자 루와 자신의 사이를 띄우고 있던 느슨함이, 아주 가깝게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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