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해!!'
기숙사 방문을 열자 펑,하는 폭죽소리와 함께 반가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요루미는 작게 소리질렀다. 아, 진짜... 놀랬잖아! 투덜거리는 말과는 다르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피어났다. 뒤쪽에 숨어 있었던 건지 요루미의 앞으로 걸어나온 하루카가 초를 꽂은 케이크를 내밀었다. 그리고 들리는 생일축하노래. 요루미는 눈물이 조금씩 차올랐다. 노래가 끝나자 손등으로 눈가를 살짝 문지르곤 불이 붙은 촛불을 후우, 하고 불었다. 촛불의 불이 모두 다 꺼지자 다시 펑! 폭죽소리가 들려왔다.
"히익! 또야...? 폭죽 좀 그만할 생각은 없어?! 방금게 마지막 폭죽이지? 빨리 그렇다고해!!"
"맞아, 아쉽게도 폭죽은 이제 없어! 그나저나, 엄청 놀라네... 아, 이게 그거지? 개복치?"
토모치카가 요루미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그럼 요복친가? 아님 루복치할래? 장난스럽게 말하며 쇼핑백 봉투를 요루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건, 하루카랑 내가 주는 선물! 쇼핑백 봉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검은색과 흰색 패턴이 나타나는 옷이었다. 옷을 꺼내어 펼치자 요루미는 작게 소리를 질렀다. 너무 귀여워! 요루미는 옷을 몸에 대고 거울을 둘러보았다. 꽤 잘 맞는 옷 같기도했다. 이리저리 옷을 대던 요루미가 몸을 돌려 하루카와 토모치카에게 생글 웃으며말했다.
"고마워, 하루카.토모쨩. 이 옷 잘 입을게!"
"마음에 들었다면 다행이야, 요루쨩!"
"그거, 얼마전부터 계~속 고민고민하다가 산 거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세 사람은 늦은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10월 말쯤에, 요루미는 한 게임 회사로부터 스카우트가 되었다. 그 후로 교실에는 조례시간에만 얼굴을 살짝 비치고 바로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서 작곡을 하는 것은 아니였고, 주로 교육을 받거나 선배가 작업할 때 잡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요루미는 하고 싶었던 일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듯 해서 기뻤다. 친구들과는 아침에 잠깐 보는게 다라서 조금 아쉽지만.
"아, 맞다. 오토야군이 시..."
"하,하루카! 앗, 벌써 시간이...! 우린 이만 자러갈게! 잘자!"
하루카가 뭔가 말하려고 하자 토모치카가 급하게 하루카의 입을 막았다. 요루미가 두 사람을 의아하게 쳐다보자 토모치카가 하루카를 데리고 나갔다. 오토야가 뭘 어쨌단거지? 두 소녀가 나가자 방은 금세 조용해졌다. 요루미는 다이어리를 폈다. 12월 20일에서 12월 23일까지 회사 연수라고 적힌 칸을 물끄러미 보았다. 요루미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고, 그리고 일요일인 크리스마스에는 학원에서 파티가 있었다. 나흘동안은 다시 사오토메학원 학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나흘동안 같이 수업을 듣는다는 말에 하루카는 엄청 기뻐했다. 반짝이는 눈과 상기된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첫교시는 작곡가코스의 이동수업이었다. 하루카와 함께 얘기를 나누며 복도를 걷던 중 누군가가 요루를 불렀다. 조금 높은 목소리,거기다가 제 이름을 부르는데 따뜻함이 가득하고 요루미가 가장 좋아하는 이 목소리는, 오토야였다.
"오늘은 회사, 안 간거야?"
"회사에서 연수를 간다길래... 나는 안 가도 된다고해서!"
"아하...아, 저기, 나나미. 나 요루랑 할 얘기가 있어서, 데려가도 괜찮은거지?"
"네? 네! 괜찮은걸요!"
그럼 내가 먼저가서 자리잡을게! 점점 멀어지는 하루카를 보다가 시선을 오토야에게로 옮겼다. 뭘 말하려는 걸까. 크리스마스 파티에 나를 파트너로 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졸업 오디션? 페어로 나를 지목하는 거? 안절부절하는 오토야에게 요루미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할 얘기....가 어떤거야? 대충,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어. 그리고 곧 수업도.. 들어가야하니까."
"으아, 마,맞다. 수업...! 그,그러니까... 오늘, 오후에 시간 있어? ..데이트, 하지 않을래?"
데이트?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요루미는 눈만 깜박거렸다. 지금, 이거 데이트 신청이지? 잠깐 눈동자를 데구르르, 구르다가 오토야의 꽉 주먹을 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 긴장했나봐, 요루미는 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데이트, 할래!"
"..어? 저,정말?!"
오토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어,정말인거지? 꽉 쥐었던 손이 펴졌다. 그러면, 시내에서 ... 지하철역 앞, 거기서 보는거야!
만날 장소까지 정한 오토야는 요루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사이로 흘러내렸다.
*
조금 춥게 입었나? 요루미는 몸을 살짝 떨었다. 토모쨩과 하루카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는 코트를 걸치고 목도리를 칭칭 둘러매어도 요루미가 느끼는 온도는 차가웠다. 손이 시려워 호,하고 입김을 분 뒤 손바닥으로 비벼도 온기는 잠시뿐이였다. 장갑도 가져올걸. 시내는 이미 연말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화려하게 꾸며진 트리,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지만 벌써 켜진 가로등과 장식용 전구, 두꺼운 옷에 머플러를 두른 사람들. 들려오는 캐럴송까지. 요루미는 가방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냈다. 시내에 오는동안 립글로즈가 다 말라있었다. 그새 다 지워졌네...
"요루! 미,미안! 많이 기다린거야?"
뒤쪽에서 오토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보니, 이렇게 추운날에 바깥에 후드집업 하나만을 걸치고 나온 오토야가 뛰어왔다. 요루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제 목에 있던 목도리를 풀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살짝 까치발을 들어 오토야의 목에 매어주었다. 목도리에 집중했는지 빨개진 오토야의 얼굴을 요루미는 보지 못했다.
"감기 걸리려고 그렇게 춥게 입고 나온거야? .... 다 됐다."
"그건 아닌데... "
예쁘게 잘 매어진 목도리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요루미가 웃었다. 우물쭈물하는 오토야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루미는 무의식적으로 오토야의 손을 먼저 잡았다. 찬공기에 차가워진 자신의 손과는 다르게 오토야의 손은 따뜻했다. 오토야의 손이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요루미는 정신을 차리곤 손을 빼내었다.
"...미,안! 이런데 오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손을 잡게 되어서... 불쾌했다면 미안해..."
"아 ...! 전혀! 전혀 불쾌하거나 그렇지 않았어! 오히려 좋았는걸! "
오토야의 말에 요루미는 갑자기 얼굴에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좋았다고? 진짜로? 요루미는 용기를내어 다시 오토야의 손을 잡았다.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토야가 요루미의 손을 꽈악 잡았다.
"사람이 많으니까, 내 손, 놓치면 안 돼?"
" ....응. 안 놓치도록 꼬옥 잡고 있을게."
두 사람은 느리게 인파속으로 들어갔다.
*
연말이 다가오느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발걸음을 옮기는 곳 마다 사람에게 이리저리 치였다. 오토야와 요루미, 두 사람은 손을 꽈악 잡고 있어서인지 서로 떨어지지않았다. 아니, 떨어지지않으려고 했다. 두 사람은 돌아다니며 짧게짧게 얘기도 나눴다. 회사는 어때? 힘들지는 않아? 전혀. 좋은 분들이 많아서, 오히려 회사 사람들이 더 힘들지 않을까,해. 그렇구나.
해가 완전히 사라지자, 거리의 조형물에 불빛이 들어왔다. 나무에 설치된 전구에도, 조각상을 따라 놓인 전구에도 불이 들어와 반짝반짝 거렸다. 어두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더 많아진 것 같았다. 거리에는 딸랑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빨간 자선냄비에 동전을 넣는 아이, 타꼬야끼를 먹는 여학생 세 명,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지 장난감을 사가는 아저씨. 사람 엄청많네. 요루미는 자유로운 손을 호,하고 불었다. 오토야와 잡은 손은 따뜻한데, 반대쪽 손은 언 것처럼 잘 움직이지도 않았다. 저기,요루. 오토야가 요루미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조금 느껴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잠깐 고민하는 듯 하다가 손을 꺼냈다.
"생일 축하해! 이,이건 낮에 주려고 했지만... 선물이야!"
오토야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작은 상자였다. 조심스럽게 손에 상자를 받았지만, 요루미는 손에 올려진 것을 빤히 보다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 있던 것은 체인팔찌였다. 팔찌는 금색에 분홍빛이 감돌았고, 띄엄띄엄 분홍색 장미가 있었다. 요루미는 팔찌를 꺼내어 손목에 팔찌를 채워봤다. 처음 착용하는 체인팔찌라 몇번 버벅거렸지만 곧 바로 채웠다. 요루미는 팔찌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손목에 찬 팔찌가 살짝 흔들렸다. 예쁘다. 오토야가 작게 속삭였다. 요루미는 오토야를 향해서 활짝 웃어보였다.
"고마워, 오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