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의 시간대는 아이비파 본편, 우타프리 올스타 미카제 아이 루트 엔딩의 시간대로부터 15년이 지난 때입니다.
시상식에 초대를 받았다. 1년에 네 번 열리는 The Television Drama Drama Academy Award, 일명 연기대상이었다. 사무실에 들렀다가 츠키미야씨로부터 건네받은 초대장에는 올해 늦가을에 시나리오를 쓴 드라마 제목이 적혀있었다. 그 밑으로 날짜와 시간, 장소가 적힌 부분을 보며 웃었다. 장르는 판타지 로맨스였다. 내용은 클리셰로 가득했지만 그 맛에 본다던 드라마 팬들도 많았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드라마는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그 사이 나는 계속 촬영장에서 대본을 고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많은 팬들이 더 보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왔지만 단호하게 잘라냈다. 정해둔 스토리라인을 바꿀 수는 없다는 데에 작가들의 의견이 모였다. 아이는 주조연 캐릭터를 맡았는데 러브라인이 있었다. 짝사랑하는 역할이었다. 그 덕분에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서 같이 연기 관련 회의를 했다. 두 달동안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츠키미야씨가 웃으며 무언가를 또 건네주었다.
"아이쨩한테도 이거 전해줄래?"
"오늘 사무실 안 들렀나봐요? 온다고 하던데요."
"촬영이 길어질 것 같다고 바로 집으로 가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핸드폰을 꺼내서 보니 과연 메시지가 와있었다. 당연하게도 아이에게서 온 것이었고 늦을 것 같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저녁은 먼저 먹으라고 했다. 뭔가 사서 들고 갈까 하고 집 근처 도시락 가게를 떠올렸다.
"비파쨩은 각본상 후보에 올라서 초대받은 거고, 아이쨩은 조연남우상 후보에 올랐어."
"아이가 무척 기뻐하겠네요."
"비파쨩은 안 기뻐?"
"당연히 기쁘죠. 그 고생을 했는데 안 기쁠 리가 있겠어요?"
"하긴 그건 그렇네. 그 날 나는 류야랑 사회를 보러 갈 거야."
"거기서 또 보겠네요."
"응, 그리고 그 날 사무소에서 망년회 열리는 거 알지? 그 날은 아이쨩네랑 그 후배들이랑 나랑 류야랑 샤이니만 참가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꼭 와야해?"
"물론이죠. 아이랑 같이 갈게요."
츠키미야씨와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코토부키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망년회 꼭 오라는 내용이었다. 아이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어서 아이 얘긴 안 하느냐 물었더니 조금 전에 메시지 보냈다고 했다. 지금쯤 아이가 한숨을 뱉고 있을 게 분명해서 웃음이 났다.
겨울 연기대상은 연말에 가까운 날짜여서 비파는 한국의 연말시상식을 떠올렸다. 연말이면 밤마다 티비 앞에 앉아서 연말시상식을 보았다. 재미를 따지자면 비파는 그렇게 즐겁게 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연말이면 한 번씩은 봤던 게 떠올랐다. 일본에 와서 이렇게 상을 받으러 참석하게 될 줄은 몰라서 기분이 묘했다.
무대를 보며 웃었다. 무대 위에선 한창 시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연남우상 차례였다. 아이가 상을 받게 되어서 무대 위에 올라가있었다. 뒤에서 팬들의 함성이 끊이질 않았다. 아이는 하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검은색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었다. 조명을 받고 빛이 반짝여서 더욱 그를 멋있게 보이도록 했다.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입고 있는 드레스는 아이와 함께 고른 것이었다. 일부러 하얀 드레스로 골랐다. 물론 사람이 많은 곳이었기에 물론 커플룩으로 맞추지는 않았다. 샵도 다른 곳을 이용했다. 평소 잘 입는 보헤미안풍이었다. 그게 가장 안전했다. 그래도 조금은 욕심을 부리고 싶어서 색은 같은 걸로 맞췄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내용은 별 다를것 없었다. 내가 조금 전에 각본상을 받을 때 그랬듯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감사한다는 말 등등을 계속 이어갔다. 잠시 후 할 말은 다 끝났겠지 싶어서 박수를 치려는 순간, 아이가 다시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뻔 했다.
망년회가 열리는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들 음식을 거의 다 먹은 상태였다. 하루카와 토모치카가 미리 빼뒀다면서 내 몫의 음식이 담긴 그릇을 건네주었다. 나는 입 안 가득 음식을 넣었다. 하루카가 괜찮느냐 물었다.
"뭐가?"
"연기대상 봤어. 설마 미카제 선배가 거기서 그런 이야기를 할 줄이야. 아까 여기 완전히 난리났었어. 그나마 다행인 건 인터넷에선 미카제 선배가 연기에 대해 배우는 연기 선생님이 있다는 얘기는 전부터 있었다는 얘기들이 이어서 별로 큰 반응은 없다는 거지만."
"그거 비파씨 이야기 맞죠?"
"정확히는 조언자지만요. 뭐 아이돌은 3년 전에 은퇴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비파, 정신줄 놓으면 안 돼."
"난 괜찮아요."
나는 음식을 다시 입에 넣었다. 사오토메씨와 휴가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는 사무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토모치카가 말했다.
"'내게 사랑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에 대해 알려준 연기 선생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라니. 그 얘기, 미카제 선배랑 비파의 관계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눈치챌 거야."
"그거라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제 친구들이랑 제 담당자만 알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아이도 어디 가서 얘기할 리가 없으니까요."
"다행이네요."
하루카가 맑게 웃었다. 토모치카도 다행이라는 듯 따라서 밝게 웃었다. 토모치카가 각본상 받은 거 축하한다면서 샴페인을 건네주었다. 술이 그렇게 센 편은 아니어서 조금 나눠서 마셨다.
음식을 모두 먹은 후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아이는 이제 막 코토부키씨에게서 벗어난 참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무알콜 샴페인을 건네주었다.
"이제 벗어났네."
"아까 수상소감 때문에 레이지가 자꾸 놀리잖아."
"뭐, 돌려서 말한 거니까 그 뜻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놀림 받을 각오 정도는 해야지 않아?"
"난 내 마음을 표현한 것뿐인걸."
그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고 얼굴이 붉어졌다. 이렇게 직설적인 표현들은 15년이 지나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는 것으로 쑥스러움을 감췄다. 아이가 손을 마주 잡았다. 나는 웃으며 아이의 눈을 보았다. 맑은 바닷빛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아까는 정말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 했다니까?"
"실제로 그러지 않았잖아? 비파는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있었어."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간신히 참았어."
물론 그런 상황에 아이가 대처하지 못할 리가 없지만 만에 하나라는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십년감수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얘기하고 싶었어?"
"실제로 이번 드라마는 비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당연한 거야."
"나만 도움 받은 것도 아닌 걸. 대본 쓰는 동안 아이와 상의하면서 나도 많은 영감을 받았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얘기할 걸 그랬네."
"안 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는 여전히 나를 똑바로 보았다. 그러나 표정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건 비파가 나한테 하는 말이잖아? 나만 들으면 충분해."
"아이의 말은 전국 팬들이랑 국민들이 다 들었는데?"
"아니, 이 말은 비파한테만 주는 거야."
아이는 허리를 살짝 숙이고 내 왼손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린 후에 입을 살짝 맞췄다. 그 자세 그대로 나를 올려다보며 사랑을 속삭였다. 나는 목까지 붉어진 것을 느끼며 뛰는 심장을 달랬다. 나 또한 사랑을 속삭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때 파티장에 울리던 음악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