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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계획과 새해 맞이

 

레나투스x피터파커

최도제

 

희뿌연 김이 창가에 서렸다. 시간은 화살처럼 쏜살같이 흘러갔다. 어느덧 달력의 마지막 장이었다. 한 해의 끝물을 맞이한 사람들은 분주했다. 그건, 어벤져스 타워에 사는 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토니 스타크의 주도하에 연말파티가 예정되어 있었고,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에게 신년 계획을 세워보라는 은근한 언질을 주곤 했다. 연말파티를 준비하면서 시시덕 거리는 토니 스타크와 신년계획으로 눈치주는 스티브 로저스 사이에 있는 레나투스와 피터는 샌드위치에 낀 베이컨과 다를 바 없었다.

 

두 사람은 동질감을 느끼며, 테이블 앞에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각자의 앞에는 스티브가 주고 간 A4 한 장과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코코아가 있었다.

 

“레나, 생각해둔게 있어?”

“전혀.”

 

레나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전혀 내년의 일정에 대해 생각해둔 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해가 끝나는 것과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것은 그녀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하루가 또 지나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감흥없어 보이는 레나투스와 달리, 피터는 약간 들떠 있었다. 어벤져스에 들어오게 된 지 딱 1년이 지난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그가 레나투스에게 자신이 피터 파커이면서 동시에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공개한지 1년이 되었다는 의미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가 피터 파커이던, 스파이더맨이건 별 상관 안했다는 것과 별개로.

 

“넌 생각해둔게 있어?”

 

레나투스가 되물어오자 피터는 곱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간결한 대답에 레나투스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무슨 계획이냐 물어봐도 피터는 묵묵부답. 미소짓는 걸로 대답했다. 피터가 입을 다물수록 레나투스의 궁금증은 커져갔다. 생각해둔 것이 얼마나 거창한 계획이길래, 저리도 입을 다무나 싶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려줄게.”

 

부끄러움을 담아 살짝 웃으며 피터가 말했다.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피터가 결국 절충안을 제시하자, 레나투스는 집요하게 묻는 것을 포기했다. 피터에게서 당장 듣는 것을 포기했다해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숨길 생각도 없었다. 티스푼으로 애꿎은 코코아를 소리가 나도록 휙휙 휘저으며 표출했다.

 

맞은 편에서 그걸 본 피터는 어색히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내년에도 어벤져스는 바쁘겠지?”

“당연한 말을. 콜슨의 일을 도와줘야 해.”

 

쉴드가 무너지고, 새로운 쉴드의 국장이 된 콜슨은 연말파티에 참석할 수 없을 만큼 바빴다. 당연히, 어벤져스는 올해도, 내년에도 그런 콜슨을 도와야 했다. 정확히는 도와주고 싶어했다. 콜슨이 상황을 좀 더 대국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라며, 어벤져스의 도움을 8할정도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왜 거절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음.”

 

레나투스의 투덜거림에 피터는 애매모호하게 웃었다. 레나투스의 마음도, 콜슨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인력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충분히 그의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까지 도움 받고 싶지 않을 터이고, 할 수 있는 범위라면 얼마든지 도와줄 의향이 있는 레나투스는 거절받는 것이 익숙치 않을 터.

 

“토니씨랑 비슷하네.”

“뭐?”

 

토니 스타크도 며칠 전, 같은 내용으로 불평한 것을 기억해낸 피터가 살풋 웃으며 말했다. 그걸 들은 레나투스는 세상이 무너진 얼굴을 했다. 세상에, 피터투스! 너마저!

 

“믿을 수 없어! 그런 말을 하다니. 내가 토니 스타크랑 비슷하다고?”

“모욕 받은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레나투스.”

 

양반은 될 수 없는 토니가 레나투스의 뒷편에 불쑥 나타나 말했다. 화두에 오른 당사자의 등장에 레나투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미간 찌푸리지마. 주름 생긴다.”

 

토니가 검지 손가락으로 레나투스의 미간을 살살 쓸었다. 보다못한 레나투스가 낚아채기 직전, 손을 떼며 토니가 말했다.

 

“여튼, 두 사람 다 캡틴이 내준 숙제는 그 정도로 해두고, 옷을 갈아입어. 곧 파티니까.”

“옷? 이대로 있어도 상관없는데.”

 

옷을 갈아입으라는 토니의 말에 레나투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파티라해도, 사실상 술을 마시며 게임을 즐기는 홈 파티였기에 별다른 옷을 갖춰입을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기준에선.

 

“무슨 소리. 오늘은 특별히 내가 어벤져스를 위해 맞춘 옷이 있다고! 자자, 일어나. 프라이데이가 안내해줄거니까.”

 

토니의 등쌀에 떠밀려, 레나투스와 피터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야했다.

 

“스타크는 쓸데없는 일을 벌리길 좋아한단 말이지!”

“나쁜건 아니니까, 너무 그러지마. 레나.”

 

토니를 감싸는 피터의 말에 레나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피터를 노려봤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옷갈아입고 올게.”

 

노려보는 그녀의 시선을 피해 피터가 허겁지겁 방 안으로 도망쳤다. 뒷모습을 보고, 레나투스가 한숨을 삼킨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토니 스타크가 그녀에게 나쁘게 구는 건 아니라는 걸.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생각이지.

 

결정적으로 토니는 그녀를 귀찮게 했다. 그의 의도는 좋았지만, 실패한 가장 대표적인 일은 소코비아의 울트론 사태 아닌가. 수습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소코비아의 일은 토니도 제 잘못임을 인정하니, 넘어가는 바이지만.

 

“에휴.”

 

내년으로 넘어가면, 토니가 조금은 변했으면 좋겠군. 레나투스는 중얼거리며 프라이데이가 안내하는 방으로 이동했다. 토니 스타크가 맞춤으로 준비했다는 옷을 입을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준비한 사람의 성의를 무시할 정도로 악인은 되지 못하는 터였다. 늘 그랬다. 매정히 내치지 못해서 결국은 들어주고 마는 어설픔. 스스로가 한심하다 생각하며, 그녀는 방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검보라빛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 하나가 배치되어 있었다. 몸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을 제외하고는 다른 가구는 일절 없었다. 묘한 부분에서 실용적이라니까, 스타크는. 짤막한 감상과 함께 레나투스는 드레스 앞으로 걸어갔다. 살짝 손으로 드레스를 만진 그녀는 입을 지 말지를 망설였다. 생각한 것보다 옷이 그녀의 취향에 부합한다는 것과 토니 스타크가 준 드레스를 그대로 입는 것 자체에 대한 약한 거부감 사이에서 고민했다. 결국, 저울추는 기울었다.

 

레나투스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기 무섭게, 파티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미 그녀가 방에 들어갔을 시점에서 초대받은 이들이 어벤져스 타워에 도착해있었고 일정부분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녀는 나타샤가 만들어준 칵테일을 홀짝이며 바에 앉아있었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이들의 사이에 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레나, 예쁘네.”

“그래?”

 

나타샤의 칭찬에 레나투스는 감흥없이 대답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자신이 예쁜 축에 속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반응에 나타샤는 설풋 웃었다.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며.

 

“근데, 나타샤 피터는?”

“피터?”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피터를 찾는 레나투스의 질문에 나타샤는 앙큼하게 모르는 척 굴었다. 싱글싱글 웃는 낯을 보고, 눈치챈 레나투스는 미간을 좁히며 재차 채근했다.

 

“피터가 어디있는지 이미 알고 있잖아. 그 녀석, 어디 있어?”

“으음, 피터 말이지. 저어어기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

 

자력으로 탈출하지 않은 이상. 덧붙이며 나타샤가 가르킨 방향에는 사람들이 한 뭉텅이로 모여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걸 꺼리는 레나투스였지만, 그 안에 피터가 있다는 말에 안 가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망설이는 레나투스의 등을 나타샤가 툭 밀었다.

 

“어리숙해서 스파이디는 저기서 우물쭈물거리고 있을 걸. 가서 구해줘.”

“하아….”

 

대충 무슨 상황으로 피터가 저기 있는지는 알겠다만. 레나투스는 한숨을 내쉬며, 나타샤가 가르킨 방향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니, 사람들의 틈속에서 당황해 쩔쩔 매는 피터의 모습이 천천히 드러났다. 멍청이. 중얼거리며 레나투스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파고 들었다.

 

“스파이더맨! 이번에 괜찮다면….”

 

한 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피터의 팔을 붙잡은 남자가 보였다. 사람 좋은 피터 파커는 웃는 얼굴로 거절도 못하고 있었다. 멍청이. 한심하게 뭐하는거야? 레나투스가 피터를 붙잡은 손을 떼내려 할 때였다.

 

콰아앙. 귓전을 흔드는 요란한 폭발음이 타워에 울려퍼졌다. 즐겁게 웃고 떠들던 파티가 엉망이 되는 건 한 순간이었다. 지축을 흔드는 흔들림에 중심을 잃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토니 스타크가 자랑하던 벽면의 통유리가 깨져나갔다. 사방 팔방으로 튕기는 파편을 내추럴 실드로 막아낸 레나투스는 상황을 살폈다.

 

어벤져스 타워를 기습공격한 건 인휴먼즈였다. 근래에 들어, 소코비아 사태로 인해 인휴먼즈 등록에 관해서 반대하는 입장인 인휴먼즈가 테러를 자행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소코비아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토니 스타크가 공격받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놀라운 건, 하필 파티가 진행되고 있는 어벤져스 타워에 그들이 오늘 바로 공격을 감행했다는 것이었다. 홈파티는 참석하는 사람 외에는 사전에 일정을 알 수가 없었고, 어벤져스 뿐만 아니라, 토니와 친한 수장들이 참석하는 자리였기에 어벤져스 타워는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프라이데이를 업그레이드 했다고, 토니가 자랑하던 것이 엊그제의 일.

 

하지만, 이미 사태는 벌어졌고, 인휴먼즈들은 보이는대로, 닥치는대로 공격하고 있었다. 연말까지 일을 해야한단말이지! 정말 지긋지긋하지 않아? 토니가 아이언맨 슈트를 불러내며 외쳤다. 그 말대로, 연말까지 푹 쉴수 없다는 사실에 자리에 있던 어벤져스 일원 모두가 동의했다.

 

“토니의 초대를 받는게 아니었어.”

 

어느새 레나투스의 등 뒤에 선 나타샤가 투덜거렸다. 그냥 집에서 쉬고 있을 걸. 나타샤의 불평을 들은 레나투스는 접근하는 인휴먼즈를 향해 총알을 박아넣으며 대답했다.

 

“나타샤는 선택권이라도 있었지. 난 없었는걸.”

 

어벤져스 타워에 상주하는 레나투스는 나타샤처럼 후회할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 입술을 삐죽이는 레나투스의 모습에 나타샤는 웃으며 인휴먼즈의 복부에 주먹을 강타했다.

 

“그건 유감인걸.”

 

인휴먼즈의 공격은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정리될 수 있었다. 어벤져스 전원이 파티에 참석해 있었고, 그에반해 공격을 하기 위해 쳐들어온 인휴먼즈의 숫자는 너댓으로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약한 것은 아니라 제압하는대에 시간이 소모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부상자,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최선이었다.

 

“오, 이런. 내 타워의 신년 디자인을 멋대로 해주셨구만.”

 

결박된 상태로 있는 인휴먼즈를 내려다보며, 토니가 말했다.

 

“토니 스타크…!!”

 

인휴먼즈들 중 한 명이 이를 빠드득, 갈며 토니를 노려보았다. 분함이 드러난 얼굴. 어떻게든 토니에게 위해를 가하려 드는 모습에 레나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허튼 짓은 하지 못하도록 하는 편이 좋지. 레나투스는 옆에 차고 있던 총을 집어들어 인휴먼즈의 손등에 발사했다.

 

탕. 소리와 함께 총알이 관통한 손등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버티려드는 모습에 레나투스가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기려 할 때였다.

 

“레나.”

 

그녀의 손 위로 겹쳐져 온 손의 주인을 확인했다. 피터 파커였다. 파티에 참석했다가 휘말린 일반인들을 지키며 내보내느라 정신 없었던 스파이더맨. 그의 말림에 레나투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파커. 놔.”

“못해.”

 

레나투스만큼, 피터도 단호히 대답했다. 둘이 눈빛으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토니가 두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말렸다.

 

“자자, 여기는 나랑 인휴먼즈하고 대화를 나눌테니. 다들 돌아가서 쉬도록 해.”

“무슨 소리야. 다같이 듣는 곳에서 대화해.”

 

레나투스가 찡그린 얼굴로 토니의 행동에 반발했다. 그녀도 엄연히 사태의 피해자였기에, 인휴먼즈와 토니가 나눌 대화를 들을 자격은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엄연히 맞는 말이었다.

 

“대화 내용은 차후에 캡틴과 정리해서 알려줄게. 나머지는 피곤하잖아.”

 

가서들 쉬라고. 내 배려니까. 토니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더는 가타부타 말할 도리가 없어졌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나타샤였다. 파편에 의해 그녀의 옷은 찢어진지 오래였고, 토니의 말대로 피로감을 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타샤?”

“옷 갈아 입으러 갈거야. 거기 있는 박사님도 옷을 갈아입어야 할 거 같은데. 같이 갈래요?”

 

나타샤가 웃으며 구석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배너 박사를 가리켰다. 헐크로 변신할 뻔 했던 배너박사는 상반신의 옷이 찢어져 넝마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어색히 웃으며 나타샤의 뒤를 따라갔다. 한번 터진 물꼬는 쉼없이 물이 새기 마련이었다. 그 뒤를 따라, 비전과 막시모프 남매가 떠나갔다. 결국, 방에 남은 건 인휴먼즈를 추궁하려드는 토니와 캡틴, 그리고 레나투스와 피터뿐이었다.

 

“레나투스.”

“알았어. 내가 졌어.”

 

스티브 로저스까지 자신을 부르자, 레나투스가 양손을 들어올려 항복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홀을 빠져나가는 레나투스의 뒤를 쫓아 피터도 움직였다. 앞서 걸어가는 레나투스를 따라온 피터는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옆에서 보폭을 맞췄다.

 

“엉망이야.”

 

레나투스의 말에 피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니가 신나하며 기대해도 좋다고 했던 연말파티는 엉망으로 끝이 나버렸다. 신년은 인휴먼즈의 테러에 대한 대응에 관한 회의로 시작할 터고, 피터가 고뇌하며 세운 신년계획은 사실상 전면 백지화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냥 처리하면 편한데.”

“인휴먼즈 이야기야?”

“맞아. 피터, 아까는 왜 말린거야?”

 

걷던 걸 멈추고, 레나투스는 피터를 직시했다. 발포를 멈춘 것에 대해 추궁이 들어오자, 피터는 한숨을 쉬었다.

 

“당연한거잖아. 배후를 물어봐야하니까.”

“누가 뒤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데?”

 

그녀의 지적에 피터는 입을 열지 못했다. 확실히, 이미 그들은 인휴먼즈를 뒤에서 선동하는 자가 누군지 애진즉에 파악한 후였다. 하지만….

 

“증언을 확보하면 좋으니까. 토니씨가 모두를 내보낸 것도 레나처럼 돌발행동이 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러신 거라고 생각해.”

“돌발행동이라니! 엄연히 생각하고 움직인 거였어.”

 

토니를 공격하려는 헛수작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려던 위협일 뿐이었어. 레나투스가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 단숨에 죽일 의사가 없었음을 밝히는 레나투스의 모습에 피터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알아. 그치만 난 네가 손을 더럽히는 것이 싫었어.”

“…이미 내 손은.”

“깨끗하지. 고결하고. 모두를 지켜낸 손이니까.”

 

피터가 레나투스의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로 가져갔다. 그의 입술이 레나투스의 손등에 닿았다. 피터의 입술이 레나투스의 손등에서 떨어지는 순간, 타워의 밖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새해 기념으로 터트리는 폭죽 소리였다. 또 다시 테러가 일어난 줄 알고 피터를 뿌리친 채, 총을 집어든 레나투스는 그저 폭죽소리였음을 확인하고 허탈한 얼굴을 했다. 폭죽이였잖아.

 

“괜히 놀랐네.”

 

투덜거리며, 총을 다시 집어넣는 레나투스를 피터는 가만히 바라봤다. 한시도 긴장을 놓치지 않는 그녀를 볼때마다 그는 기묘한 느낌을 받고는 했다. 피터는 다시, 레나투스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피터가 잡아오는 걸 거절하지 않았다.

 

“아까 일로 많이 놀랐던 거 같아. 역시 거기서 인휴먼즈랑 대화하는 것보단 방에 가서 쉬는게 좋겠어.”

“…그래.”

 

더는 부정치 않고, 피터와 함께 레나투스는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나가는 그들의 옆에선 신년을 기념하는 폭죽이 쉼없이 터지고 있었다. 눈부신 폭죽을 지나치며, 피터는 생각했다.

 

올해도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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